— 장강명 『먼저 온 미래』를 읽고
1994년, 이창호 9단이 세계바둑최강전에서 한국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기사 후지사와 슈코 9단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축하 대신 이런 말을 적었다. “내가 졌지만, 이 군의 바둑됨됨이는 내키지 않았다. ‘정감이 없는 바둑’이다. 바둑은 예술이어야 한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재인용, 요약)
단순히 패자의 자기위안이었을까? 난 진짜로 이렇게 믿었다고 생각한다. AI 이전의 바둑은 예술이었다.
바둑 한판 중의 첫 삼분의 일은 수읽기가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작동하는 영역이었다. 바둑 선수들과 애호가들은 이 때문에 바둑을 예술로 생각했다.
예술에서 확률 싸움으로
하지만 알파고 이후, 바둑은 직관에 의존하는 예술이 아니라 명확한 승패 확률이 존재하는 계산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이제 AI는 모든 수의 승률을 계산한다. 어떤 프로기사가 창의적인 수를 구사하더라도 인공지능으로 찍어보면 ‘이건 승률이 10% 떨어지는 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의 세계에는 정답이 없다. 천재 화가의 그림을 보고서 ‘난 별로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바둑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AI가 정답을 제시하자,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을 버리고 AI의 사고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천재들의 예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해답을 암기하는 것으로 훈련 방식은 변했다.
경영도 지금 같은 기로에 서 있다
AI는 아직 경영자를 대체하지 못한다. 불확실성 속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 그 무게를 짊어지는 것. 이것은 여전히 인간 경영자 고유의 역할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알파고가 그랬듯, 그 경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전략 기획의 초안, 의사결정의 틀, 보고서의 구조. 많은 영역에서 AI가 먼저 판을 깔아주고 있다. 문제는 처음부터 AI의 판 위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데 있다. 자신의 관점을 먼저 세우지 않고 AI의 초안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오리지널리티는 조용히 지워진다.
바둑 기사들이 AI의 수를 암기하듯, 경영자도 AI의 프레임을 빌려 쓰는 데 익숙해진다. 실력처럼 보이는 것들이 쌓이지만, 철학은 점점 옅어진다.
그렇다면 경영은 바둑과 다른가
바둑의 한 수를 놓고 승부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경영에서의 의사결정 결과를 확률로 계산하기는 어렵다. 경영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승부 이상으로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이 기준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경영자의 역할이다.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지, 어떤 조직을 세울 것인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 그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경영 철학이 된다.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익 극대화가 경영의 전부가 된 순간, 그 경영은 지속가능성을 잃는다.
AI가 경영의 정답을 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남는 질문은 하나다. 경영자는 AI에게 무엇에 대한 정답을 요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