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의 비서실 vs. 최고경영자의 비서실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51장 — 최고경영진의 구조
들어가며
비서실이라고 하면 흔히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최고경영자의 대변자로서 막후에서 조직을 조정하는 권력 집단이다. 다른 하나는 최고경영자의 일정과 업무를 돕는, 수족 같은 조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떠올리지 못하는 비서실이 하나 더 있다. 최고경영자가 새로운 관점을 보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도록 자극하고 지원하는 조직이다. 운영이라는 몸통이 아니라, 미래와 전체를 보는 두뇌에 영양을 공급하는 조직인 것이다.
이 조직은 이상적으로는 꼭 필요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잘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필요성에 대해 인정받고, 적절한 아젠다를 세팅하며, 지속가능한 운영 체계를 갖추기가 대단히 어렵다.
내가 3년 9개월 동안 이끌었던 미래경영연구센터는 이런 역할을 하는 조직이었다. 경영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가 알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조직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아젠다를 찾았고, 그것을 최고경영진에게 제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확률이 매우 낮은 싸움이었다. 경영진이 묻지 않은 질문을 먼저 들이미는 일은 많은 경우 자리를 얻지 못했다. 마치 공들여 조각을 한 후, 넓은 호수에 던지는 느낌이었다.
이 챕터에서 난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최고경영이라는 일은 따로 있는데, 그 일에 영양을 공급하는 조직은 왜 두기 어려운가. 조직 전체가 운영이라는 몸통에 영양을 공급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미래를 보는 두뇌에는 누구도 영양을 공급하지 않는다. 그 영양분은 내용이나, 운영 방식이 다른 영양 체계와 달라야 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나 조직은 매우 드물다.
최고경영의 일은 운영의 일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드러커는 최고경영이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일의 양도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고, 그 일이 요구하는 서로 다른 기질을 한 사람이 모두 갖추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든 사례가 헨리 포드다. 포드자동차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두 사람이 최고경영을 나누어 맡은 팀 체제였다. 그러나 한 사람이 떠나고 포드가 모든 것을 혼자 쥐게 된 순간부터 회사는 내리막을 걸었다. 아무리 전설적인 경영자라도 한 사람이 모든 최고경영을 맡아 지속가능한 성공을 거두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에서 내가 더 무겁게 받은 것은 다른 지점이었다. 최고경영의 일이 운영의 일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운영은 현재를 다룬다. 최고경영은 미래와 전체를 다룬다. 운영은 이미 정해진 사업 안에서 성과를 낸다. 최고경영은 그 사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드러커가 앞선 장에서 최고경영의 첫 과업으로 꼽은 것도 “우리 사업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오늘의 운영 지표 안에서는 떠오르지 않는 물음이다. 그가 이 장에서 덧붙인 말도 같은 맥락이다. “내일의 핵심 인재는 어제 핵심 인재를 뽑았던 것과는 다른 이유로 뽑혀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최고경영의 일이 운영과 다르다면, 그 일을 떠받치는 정보도 운영 정보와 달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조직은 두뇌에게도 몸통과 똑같은 정보를 올려보낸다.
이 지점에서 비서실의 딜레마가 생긴다. 최고경영이 운영을 자기 일로 삼으면, 그 곁의 비서실은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운영을 지원한다는 것은 결국 운영에 개입한다는 뜻이고, 최고경영의 이름을 빌린 개입은 곧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보만 전달하는 비서실은 현업을 이길 수 없다. 현업의 정보가 훨씬 풍부하고, 맥락에 맞고, 시의적절하다. 운영 정보의 세계에서 비서실은 늘 현업보다 한 발 늦고 한 겹 얕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서실은 운영이 아니라 최고경영 본연의 일을 위한 조직이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순서가 있다. 비서실이 먼저가 아니다. 최고경영이라는 별도의 일이 존재한다는 자각이 먼저다. 이 자각이 없으면 비서실은 갈 곳을 잃는다. 운영을 도우면 권력이 되고, 정보만 주면 현업에 밀린다. 최고경영진과 조직 전체가 그 일의 필요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비서실의 일에 정당성이 생긴다.
내가 겪은 확률 낮은 싸움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조직이 최고경영의 일을 자각하지 못한 곳에서, 경영연구 조직 혼자 아젠다를 들이밀고 있었다.
모두가 유능했는데 회사는 시장을 잃었다
드러커가 든 사례 하나가 이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 전기기기 제조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오랫동안 증기터빈 사업에서 앞서 있었다. 전쟁을 거치며 제트엔진 사업에 들어갔고, 이어 원자력 발전 사업에도 진출했다. 세 사업은 기술의 뿌리가 다르고 처음에는 시장도 달랐기 때문에, 각각 별개의 사업부로 조직되었다.
그런데 고객인 전력회사의 눈으로 보면 사정이 전혀 달랐다. 증기터빈도, 제트엔진도, 원자력도 결국 전기를 만드는 서로 다른 방법일 뿐이었다. 셋 중 둘만 갖추면 전력회사는 완전한 발전 설비를 구성할 수 있었다. 세 사업은 사실 같은 사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 안의 누구도 이것을 보지 못했다. 볼 수가 없었다. 각 사업부를 지원하는 스태프 조직의 일은 자기 사업부의 운영을 돕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증기터빈 스태프는 증기터빈만 보았고, 제트엔진 스태프는 제트엔진만 보았다. 세 사업부의 책임자들은 저마다 자기 제품이 발전 시장의 주역이 될 것이라 믿었다.
훗날 꾸려진 최고경영을 위한 별도의 조직은 마침내 이 세 사업이 같은 사업이라는 사실을 짚어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회사는 주요 시장 하나에서 입지를 크게 잃은 뒤였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유능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는 시장을 잃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두뇌의 일을 하는 조직이 없었을 뿐이다.
이 풍경은 우리가 43장에서 본 하위 최적화와 닮았다. 그때는 R&D와 구매가 각자 옳은 판단을 하다가 전체를 망쳤다. 수평으로 갈라진 부서들 사이의 문제였다. 이번은 다르다. 운영이라는 몸통은 멀쩡히 돌아가는데, 미래를 보는 두뇌가 굶어서 생긴 문제다. 조직이 멈춰서 망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바쁘게 일하는 사이에 망한다.
비서실의 세 가지 함정
그렇다면 두뇌에 영양을 공급하는 조직, 즉 비서실을 어떻게 두어야 하는가. 한국 기업의 현실에는 세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는 권력의 함정이다. 국내의 한 거대 그룹은 오랫동안 매우 강력한 비서실을 운영해왔다. 그룹 전체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인사와 투자의 핵심을 쥐었다. 문제는 이 조직이 정보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조직이 되었다는 데 있다. 비공식 조직이 계열사의 이사회와 대표이사 위에 서게 되었고, 결정은 비서실이 하는데 책임은 계열사가 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두뇌에 영양을 공급해야 할 기관이 스스로 두뇌 행세를 한 것이다.
이 모델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비서실은 새로운 사업을 일찍 알아보고 키워낸 공도 분명했다. 훗날 그룹의 기둥이 된 사업들 중 일부는 이 조직이 앞장서 밀어붙인 결과였다. 하지만 많은 부작용도 발생시켰다. 각 계열사들에 대한 분권 구조가 약해지고, 혁신의 동력이 퇴색되었다. 중요한 것은 두뇌의 역할을 하는 최고경영과, 이에 영양을 공급하는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침묵의 함정이다. 위 사례와 반대로 비서실을 최소한으로만 두는 그룹이 있다. 별도의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두지 않고, 최고경영자가 직접 사업을 챙긴다. 권력화의 폐해는 없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생긴다. 최고경영진에게 미래와 전체를 보는 정보가 충분히 닿지 않는다. 두뇌가 받아보는 것은 현업이 올린 운영 보고서뿐이다. 이 조직에서는 그룹 차원의 변화를 만들 동력이 부족해지기 쉽다.
그런데 강독회에서 내가 꺼낸 진짜 어려움은 권력도 규모도 아니었다. 셋째, 아젠다의 함정이다.
최고경영진이라는 두뇌에 영양을 공급하는 비서실이 일하는 방식에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비서실이 스스로 아젠다를 찾아 경영진에게 제시하는 방식이다. 경영자가 알아야 하는 것을 들이미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경영자가 먼저 아젠다를 정하고, 비서실이 그것을 받아 연구하는 방식이다. 경영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답하는 길이다.
내가 일하던 곳은 전자를 택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확률이 낮았다. 경영진이 묻지 않은 질문은 좀처럼 자리를 얻지 못했다. 드러커는 그 이유를 정확히 짚는다. “진정한 혁신은 기존 조직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다.” 비서실이 찾아야 할 아젠다는 본래 어느 운영 조직의 소관도 아니다. 그래서 운영의 논리로 보면 보이지 않고,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어렵다.
뒤의 길을 택한 한 그룹에서 비서실의 역할은 더 선명해진다. 경영자가 직접 아젠다를 정해 경영연구 조직이 따라오게 하는 방식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고, 성과도 눈에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경영자가 이미 가진 질문에 답할 뿐이라면, 그 조직은 경영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없다. 필요한 영양이 아니라, 먹고 싶은 것만 주는 영양 체계는 영양실조를 만든다.
여기서 핵심이 드러난다. 비서실에 필요한 것은 권한이 아니다. 결정을 대신 내리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아젠다를 찾고 고민할 독립성이다.
그리고 이 독립성은 평가 방식에서 결정된다. 우리는 42장에서 기여 방식이 다른 활동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면, 강한 쪽의 논리가 약한 쪽을 잠식한다는 것을 보았다. 단기 성과로 평가받던 한 선행기술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2~3년 안에 결과를 낼 과제로 스스로를 좁히다가 존재 이유를 잃었던 사례다.
비서실도 똑같다. 비서실을 다른 운영 조직과 같은 단기 성과의 잣대로 평가하는 순간, 그 조직은 자기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알아야 하는 것을 찾는 일은 분기 실적으로 측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잣대로 평가받는 순간, 비서실은 알아야 하는 것 대신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두뇌가 굶는 가장 깊은 이유는 비서실이 없어서가 아니다. 있는 비서실마저 살아남기 위해 운영의 논리로 끌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하는 두뇌, 이를 위한 영양분
그렇다면 비서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드러커의 처방은 의외로 구체적이다.
비서실은 작게 유지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루려 하지 말고 핵심에 집중해야 한다. 실제 현업에서 성과를 증명한 사람만 들여야 한다. 그리고 5년에서 8년쯤 지나면 다시 책임 있는 운영 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비서실이 현실에서 고립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앞서 본 강력한 비서실의 인사 방식이 이 처방과 꽤 닮았다는 점이다. 그곳도 계열사의 검증된 인재를 뽑아 몇 년 일하게 한 뒤 다시 현업으로 돌려보냈다. 인사 설계만 보면 드러커의 조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비서실은 권력 조직으로 변질되었다. 차이는 단 하나였다. 비서실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사람도 규모도 아니다. 결정을 내리느냐, 질문을 던지느냐의 차이다.
강독회에서 경영 연구를 이끄는 토론자가 한 말이 이 장의 결론에 가깝다. 일이 터진 뒤에 대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렇게 불을 끄고 다니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최고경영은 불이 나기 전에 미리 고민하고 준비하는 일이라고 했다. 두뇌에 영양을 공급한다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아직 손익계산서에 잡히지 않은 변화를 먼저 보고, 경영진이 미처 세우지 못한 질문을 먼저 세우는 일이다.
드러커는 이 장을 한 문장으로 닫는다. “병목은 언제나 병의 머리에 있다.” 어떤 기업도 그 최고경영이 허용하는 것 이상으로 잘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두뇌가 굶으면, 아무리 건강한 몸통도 길을 잃는다.
맺으며
이 장을 읽으며 나는 내가 했던 일을 다시 생각했다. 그때 우리는 경영자가 알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려 했지만, 정작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조직은 많지 않았다. 나는 그 일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비서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고경영이라는 일이 따로 있다는 자각이 먼저 있어야 했던 것이다.
당신의 회사를 떠올려보라. 최고경영진은 지금 무엇을 받아보고 있는가. 현업과 똑같은 운영 보고서인가, 아니면 내일을 묻는 질문인가. 당신 회사의 두뇌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경영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인가, 아니면 알아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당신의 조직은 그 알아야 하는 것을 찾을 독립성을, 누군가에게 준 적이 있는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독서 토론 모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