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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장 — 20년째 같은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43장: 어떻게 결합하는가

들어가며

한 제조 기업에서 2006년에 벌어진 분쟁이 있다. R&D 부서가 협력사 한 곳과 함께 신기술을 선행 개발해 성공시켰다. 그런데 양산 단계로 넘어가면서 의사결정권이 구매 부서로 넘어가자, 구매는 그 협력사 대신 다른 업체를 양산사로 선정하려 했다. 본인들의 입장에서 통제가 더 쉽다는 이유였다. 개발에 참여했던 협력사는 배신감을 느꼈고, R&D 엔지니어들은 2년을 함께한 파트너가 교체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놀라운 사실은 20년이 지난 현재도 같은 회사에서 같은 분쟁이 같은 구조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조직도는 수차례 다시 그려졌고, R&D 수장도 구매 수장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런데도 분쟁의 구조는 그대로다.

드러커를 읽고 우리가 이번 주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조직의 문제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조로 해결해야 할 일을 사람들에게 책임 전가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드러커의 진단: 이것은 하위 최적화다

43장에서 드러커가 조직 병리로 지목한 증상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이 ‘하위 최적화(sub-optimization)‘다. 한 기능이 자기 관점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그 결정이 전체를 망치는 현상이다.

R&D-구매 분쟁이 바로 그 전형이다. 구매 부서 입장에서 업체 다변화는 교과서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단가를 낮추고 공급 리스크를 분산한다. 평가받는 지표에도 정확히 부합한다. 구매 담당자를 탓할 수 없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잘하고 있을 뿐이다.

R&D 엔지니어도 마찬가지다. 2년간 함께 기술을 개발한 파트너와 양산까지 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요구다. 신뢰가 쌓인 업체와 일해야 다음 선행 개발도 가능하다. 그도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잘하고 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 싸움이 되는가. 드러커의 답은 간명하다. 이 결정은 처음부터 어느 한쪽 부서의 결정이 아니어야 했기 때문이다. 양산 업체 선정은 파급 영향이 R&D, 구매, 품질, 외부 파트너 생태계 전체에 걸친다. 드러커의 기준으로는 더 높은 수준에서, 관련 기능들이 함께 판단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구매 부서 한 곳에 결정권이 떨어져 있다. 여기서부터 모든 게 어긋난다.

조정이라는 이름의 증상

경영 연구를 이끄는 토론자는 이 분쟁을 20년 넘게 지켜보면서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고 했다. 갈등이 반복될 때마다 회사는 ‘조정자’ 직책을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R&D와 구매 사이에 협의체를 만들고, 두 부서 출신의 매니저를 뽑아 ‘전략구매 담당’이나 ‘기술구매 담당’ 같은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이 바뀐 자리에 앉은 사람은 양쪽을 오가며 설득하느라 본업을 할 시간이 없다. 그가 지치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된다. 그래도 분쟁은 그대로다.

드러커는 이 현상을 정확히 짚었다. 조율이 본업인 직책이 많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분리되지 말았어야 할 것을 분리한 조직이라는 뜻이다. 조정자를 늘리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증상의 일부다. 구조가 해야 할 일을 사람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토론자의 정리가 날카로웠다. “실무자가 본업보다 타 조직을 설득하고 연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면, 그 자체가 조직이 아프다는 신호다.”

사람을 바꿔도, 조직도를 바꿔도

이 이야기의 가장 불편한 진실은 여기에 있다. 분쟁의 당사자들을 모두 교체해도 분쟁은 이어진다. 새 R&D 수장도, 새 구매 수장도, 같은 자리에 앉는 순간 같은 싸움을 하게 된다.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구조가 그들에게 그 싸움을 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조직도를 바꿔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컨설팅을 하면서 조직 설계 프로젝트를 여러 번 수행했다. 박스를 옮기고 보고 라인을 다시 그렸다. 그런데 드러커를 읽으며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다. 결정의 성격을 네 가지 기준—미래 구속력, 파급 영향, 질적 요소, 반복성—으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수준에 권한을 배치하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대개는 직책의 크기나 급여 수준이 결정 권한을 정했다. 부사장이니 이 결정을 하고, 상무니 저 결정을 한다는 식이다.

결정의 성격이 아니라 자리의 크기가 결정 권한을 정하면, 양산 업체 선정 같은 파급형 결정이 구매 부서장 한 명의 권한으로 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조직도는 바뀌어도 이 논리가 그대로면 분쟁의 구조는 그대로다.

드러커 전문가인 토론자의 한 문장이 이 장 전체를 압축했다. “조직 변경은 수술이다.” 수술은 필요할 때 해야 한다. 그러나 수술을 자주 한다고 환자가 건강해지지는 않는다. 진단이 먼저다.

맺으며

이번 장을 읽으며 필자가 가장 무겁게 받은 것은 책임의 방향에 대한 생각이었다.

우리는 흔히 조직의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 환원한다. 사일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이 팀이 왜 안 움직일까”. 20년째 반복되는 R&D-구매 분쟁도 그렇게 소비되어 왔다. 누가 더 옳은가, 누가 더 협조적인가를 따지며 지나온 20년이다.

그러나 드러커의 43장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다른 질문이다. 이 갈등의 주인공들은 잘못이 없다. 구조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사람을 바꾸려 하는 그 문제는, 사실은 구조가 해야 할 일을 사람이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직 설계는 답이 아니라 가정이다. 지금 당신의 조직에서 반복되는 같은 분쟁, 반복되는 같은 회의, 반복되는 같은 피로—이 모든 반복은 가정이 틀렸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박스를 다시 그리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결정은 누가 내려야 하는 결정인가.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결정권이 있는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독서 토론 모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