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구조는 전략을 따라야 하지만, 대신하지는 못한다
2022년부터 현대차그룹 및 외부 전문가 4명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온라인으로 모여 피터 드러커의 저서 《매니지먼트》를 읽고 토론한다. 이번 장부터 8번에 걸쳐 조직설계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한다. 이 글은 2026년 1월 26일 진행된 ‘41장: 새로운 요구와 방법(New Needs and New Approaches)’ 강독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들어가며
컨설턴트 시절, 여러 기업들의 조직 설계를 했다. 전략 프로젝트 이후 이에 맞는 조직은 제안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마무리였다. 피터 드러커가 강조한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 이 원칙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직접 현업에서 조직을 맡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CJ ENM,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현대자동차그룹 — 모두 없던 조직을 새롭게 만들며 합류했는데, 대표나 고위 임원들이 나름의 필요성을 느끼고 신설한 곳들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판 위에 올라타다보니, 조직구조에 대한 질문들 — 이 조직의 미션에 적합한 조직의 형태는 무엇인가? 기업 내 위치는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조직과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가? 등 — 을 사전에 고민하고 조직설계에 반영 할 기회가 없었다.
이 신설 조직들이 잘 작동한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애초에 조직 설계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져도, 나는 나의 리더십과 역량으로 충분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면 일 자체보다 조직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드러커는 지난 수십년간 경영자들과 경영학자들이 발전시켜온 고민과 시행착오 속에서 얻은 통찰을 다음 세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 조직 구조는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다.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전략적 질문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질문 없이 그린 조직도는 시작부터 틀렸다.
둘째, 구조를 그리기 전에 핵심 활동을 먼저 찾아라. 전략이 정해졌다고 바로 조직도를 그리지 않는다. 그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활동들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들이 조직 구조의 하중을 지탱하는 ‘빌딩 블록’이다. 건물을 짓기 전에 자재 목록을 만드는 것과 같다.
셋째, 조직 구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구조는 깊은 사고와 분석의 결과여야 하며, 방치하면 혼란과 마찰만 쌓일 뿐이다. 조직은 한번 설계했다고 끝이 아니다. 전략이 바뀌면 구조도 따라가야 한다.
명쾌하고 단순한 이 원칙들이 현실에서 왜 이토록 지켜지기 어려운지 짚어보았다.
조직도를 그리는 것은 쉽지만, 작동하는 구조를 구성하는 것은 어렵다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조직 개편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들이 결국 여섯 가지 단순한 옵션의 조합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 박스(조직)를 새로 만들거나, 없애거나, 합치거나, 쪼개거나, 조직 내 위상을 올리거나, 내리거나. 도표 위에 조직도를 그리는 작업 자체는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드러커가 정리한 세 가지 교훈을 따르기보다 그림 끼워 맞추기에만 집중하는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한 토론 참여자가 “수십년간 보아 온 조직 개편들이 전략과 납득되게 연결된 경우를 거의 경험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연말이면 반복되는 조직 개편에서 기대 효과는 늘 열심히 논의되지만, 개편의 비용 — 기존의 업무 방식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새 구조에 적응하는 동안 소진되는 에너지 — 은 거의 따져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도를 그리는 여섯 가지 동작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순하면 안 된다. 전략적으로 어떤 목적을 위해 이 변화를 만드는가? 그리고 바뀐 구조가 제대로 작동할지, 여러 관점에서 미리 검증했는가? 이 두 질문 없이 그린 조직도는 단순한 그림일 뿐 작동하는 조직 구조가 아니다.
가장 흔한 실수는 전략과 조직을 혼돈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저지르는 흔한 오류가 있다. 새로운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그 전략을 담당하는 조직을 신설하는 것으로 전략을 대신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전략은 새로운 조직 하나가 아니라, 기존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조직 신설이 전략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한 제조 기업 내에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조직을 별도로 신설했다. 전통적인 폐쇄형 R&D에서 벗어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하려는 전략이 배경이었다. 이들은 실리콘벨리 등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미래 혁신 기술의 유망한 후보들을 발굴했지만 이들을 R&D와 연결시키는 일은 번번이 실패했다.
얼핏 전략의 결과로서 조직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전략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새로운 조직 신설만으로는 부족했다. 기존 조직까지 아우르는 구조의 재설계가 함께 필요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핵심 활동은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의 발굴 뿐 아니라, 이것들이 조직 내에 흡수되어 재생산되기 위한 활동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발굴한 기술의 가치를 기업 관점에서 평가하고, 기존 내부 지식과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융합된 기술의 활용처를 발굴하는 활동들이 필요하다. 즉, 오픈 이노베이션 팀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R&D를 포함한 기존 조직 전체의 구조를 함께 재설계했어야 했다.
내가 맡았던 조직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조직에 변화를 일으키는 체인지 에이전트를 기대하며 새 조직을 만들지만, 전략을 반영한 구조 설계가 전제되지 않는 한 성공하기 어렵다. 구조의 공백은 결국 사람이 메우게 되고, 그 사람이 지치면 혁신도 함께 멈춘다.
AI 시대, 왜 조직 구조가 더 중요해지는가
우리는 그동안 ‘구조의 결함’을 사람이 메웠다. 발이 넓은 누군가가 사일로를 뚫고 인간관계로 협업을 봉합했고, 그 비용은 야근과 소진된 에너지로 분산되어 잘 보이지 않았다.
AI는 이 완충재를 서서히 걷어낼 것이다. 머지않아 한 개인이 과거 소규모 팀이 했던 일을 혼자 처리하는 시대가 온다. 그 증강된 역량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조직 구조가 그것을 허용해야 한다. 의사결정자까지의 거리, 정보의 흐름, 협업 창구의 존재, KPI의 정렬 — 이것들이 막혀 있으면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구조의 마찰을 극복하는 데 소진하게 된다. 개인의 속도와 조직의 속도 사이의 격차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드러커는 조직의 목적을 “인간의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이 말을 썼을 때 AI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문장은 지금 이 순간 가장 현실적인 경영 원칙이 되고 있다.
맺음말
드러커는 말한다. 잘못된 구조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리고 조직의 목적은 인간의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지금 이 두 문장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들린다. 개인의 역량이 증강될수록, 그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리더의 가장 본질적인 과업이 된다.
당신의 조직 구조는 지금 사람을 해방시키고 있는가, 소진시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