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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 — 경영업무의 설계와 내용

[월요강독회 #4] “도전적인 업무가 유능한 경영자를 만든다”

2022년부터 현대차그룹 및 외부 전문가 4명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온라인으로 모여 피터 드러커의 저서 《매니지먼트》를 읽고 토론한다. 각자의 현장 경험과 관점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깊이 있는 통찰을 공유한다. 이번 글은 2025년 9월 27일과 10월 20일 두 번에 걸쳐 진행된 ‘32장: 경영업무의 설계와 내용 (Design and Content of Managerial Jobs)’ 강독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들어가며

그동안 경영자의 존재 이유와 자질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경영 업무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구체적인 직무 기술서(JD)가 과연 훌륭한 경영자를 만들어낼까? 경영자에 대한 통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다.

책의 핵심 내용: 경영업무에 대한 통념과 해체

통념 1. “실무에서 벗어나 ‘관리’만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드러커의 해체: 관리 업무(부하 직원 지원, 조정 등)만 수행하는 직무는 실체가 없는 ‘가짜 직무(Non-job)‘이다. 관리 업무는 대개 직무 시간의 극히 일부만 차지하며, 오직 관리 업무에만 치중하는 리더는 부하 직원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불필요한 회의를 만드는 ‘조직의 방해자’가 될 위험이 크다. 리더가 단순한 조정자를 넘어 스스로 성과를 책임지는 ‘일하는 상사(Working Boss)‘로서 실질적인 과업을 수행할 때, 비로소 리더십의 진정한 권위가 세워진다.

통념 2. “직무는 작고 명확하게 쪼개어 실패를 방지해야 한다”

드러커의 해체: 실패를 줄이기 위해 직무를 좁게 설계하는 것은 유능한 인재를 죽이는 길이다. 너무 작은 직무는 사람을 안주하게 만들고, 변화에 저항하게 하며, 성장의 기회를 박탈한다. 즉, 직무는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도전적이고 버거울 만큼’ 크게 설계되어야 한다. 조직은 직원이 그 큰 직무를 수행하며 스스로 한계를 시험하고, 수년에 걸쳐 성장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경영자의 업무에서 이는 더욱 더 중요하다.

통념 3. “경영자는 주어진 권한과 책임 하에서 기능한다”

드러커의 해체: 권한은 상사가 시혜적으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매니지먼트의 권한은 직무의 ‘객관적인 필요성’에서 나온다. 상사가 할 수 없는 일, 혹은 현장에서 결정해야만 성과가 나는 일은 원래부터 현장의 권한이어야 한다. 조직은 리더에게 매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허락받게 하기보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예: 예산 한도, 타 부서 정책 등)“만 명확히 정해주어야 한다. 그 외의 모든 영역은 관리자가 스스로의 책임하에 자유롭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자율권’의 영역이어야 한다.

토론: ‘통제받는 관리자가 아닌, 스스로를 경영하는 리더의 업무란?‘

스무 살 청년들은 어떻게 대륙을 다스리는 경영자가 되었나

경영자를 키우는 데 있어 화려한 교육보다 더 강력한 도구는 결국 ‘직무’ 그 자체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인도 통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들은 놀랍게도 1,000명이 채 안 되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드러커는 경험 없는 젊은이들이 거대한 인도 대륙을 다스릴 수 있었던 비결로, 그들에게 막중한 책임과 실질적 권한이 실린 ‘진짜 업무’가 주어졌다는 점을 꼽는다.

이에 반해 현대 조직의 관리자들은 좁게 설정된 직무 범위와 제한된 권한 안에서 수동적인 관료로 머물기 쉽다. 전국에 백여 개의 1인 거점을 운영하는 국내의 한 물류 기업 사례를 보면 이러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현장 밀착형 관리가 필요한 탁송 사무소나 협력사 거점은 리더의 자율적 책임 경영이 성패를 가르는 핵심적인 장소이다. 하지만 본사 입장에서는 명확한 직무 설계나 엄격한 성과 기준이 없다면, 이곳이 자칫 관리의 사각지대가 되어 나태함이나 부정부패가 생겨날까 우려하게 된다.

결국 조직의 핵심 과업은 현장의 리더들이 본사의 세밀한 간섭 없이도 스스로를 경영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있다. 리더가 자율적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자기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의 본질적인 숙제라 할 수 있다.

낫투두(Not-To-Do) 리스트와 자기 통제

자율 경영의 성패는 외부의 촘촘한 감시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성과 목표를 향해 달리는 ‘자기 통제(Self-control)‘에 달려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 조직은 사고를 막는 데 급급한 나머지, 복잡한 승인 절차로 리더의 손발을 묶어버리곤 한다. 현장의 리더가 본연의 판단보다 상부 보고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면, 결국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하고 모든 책임을 상층부로 떠넘기며 무기력해지는 ‘역학습(trained incapacity)‘의 늪에 빠지게 된다.

유착이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도입된 순환 보직 제도 역시 이 지점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앞서 언급한 물류 기업처럼 관리 효율성을 위해 1~2년마다 리더를 교체하게 되면, 현장은 당장의 지표 관리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 리더가 긴 호흡으로 미래의 과업을 고민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안전한 방책일 수 있으나, 리더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조직의 장기적 미래와 맞바꾼 뼈아픈 대가이다.

결국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상층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만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금기 사항 외에는 전권을 위임하는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 조직문화의 우수사례로 꼽힌 한 국내 가구 기업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런칭할 때 할 일을 세세히 정해주기 보다는, 하지 않을 것만 정해주는 낫투두(Not-To-Do) 리스트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젊은 직원들이 우수한 성과를 내고 MZ 세대 구성원들이 가장 희망하는 직장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조정자에서 ‘일하는 상사’로

리더의 직급이 올라갈수록 실무에서 멀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곤 하지만, 드러커는 타인의 업무에만 의존하는 ‘단순 감독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진정한 경영자는 조직 성과에 직접 기여하는 자신만의 고유 과업을 가진 ‘일하는 상사(Working Boss)‘여야 한다. 실무 현장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을 때 비로소 조직에 실질적인 가치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한 광고 기획사 부사장 사례는 이 지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그는 고위 임원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한두 개의 프로젝트는 직접 기획부터 실행까지 전 과정을 완수하며 현장 감각을 유지한다. 이러한 태도는 리더가 과거의 경험에만 머물지 않고 최신 전문성을 업데이트하여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시각(Eye-opening)을 제공하는 원동력이 된다.

결국 리더가 실무와 경영을 병행하며 자신의 전문성을 끊임없이 증명할 때, 구성원들은 진심으로 리더를 신뢰하고 업무에 몰입하게 된다. 단순히 업무를 배분하고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 리더가 직접 인사이트를 공유하며 함께 뛸 때 자율성과 전문성이 공존하는 건강한 리더십 문화가 비로소 완성된다.

맺음말: 경영자 레터를 통한 자기 통제를 제안하며

우리 조직에서 팀장과 임원의 직무는 어떤 모습인가. 보고서 양식과 숫자 속에 갇혀 관리자라는 이름의 작은 새장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드러커의 말처럼, 직무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사람이 거인이 될 수도, 비범한 사람이 평범한 존재로 시들 수도 있다.

결국 자율 경영의 종착지는 리더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 실천 도구로 드러커가 제안한 경영자 레터(Manager’s Letter)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하급 경영자가 상급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직무 확약서로, 상사가 시켜서 하는 수동적 보고가 아니라 리더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강력한 자기 통제 모델이다.

이 레터는 단순히 할 일을 나열하는 목록이 아니다. 여기에는 첫째, 자신이 이해한 상사와 조직의 목표, 둘째,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설정한 성과 지표와 표준, 셋째, 이를 위해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생생하게 담겨야 한다. 리더는 이 편지를 통해 조직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공헌할 것인지 선언하고 상사와 치열하게 합의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 때, 리더는 비로소 자기 부서의 좁은 이익을 넘어 기업 전체의 성공을 조망하는 위를 향한 시선을 회복하게 된다. 외부의 강압적인 통제가 아닌 상호 신뢰가 경영의 바탕이 될 때, 리더는 비로소 지시를 기다리는 관리자가 아닌 스스로를 경영하는 주체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