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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장 — 경영자와 그의 업무

경영자는 무엇을 조직에 가져오는가?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31장: 경영자와 그의 업무(The Manager and His Work)

2022년부터 현대차그룹 및 외부 전문가 4명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온라인으로 모여 피터 드러커의 저서 《매니지먼트》를 읽고 토론한다. 각자의 현장 경험과 관점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깊이 있는 통찰을 공유한다. 이번 글은 2025년 9월 22일 진행된 ‘31장: 경영자와 그의 업무(The Manager and His Work)’ 강독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들어가며: 지휘자를 넘어 작곡가로, 경영은 천재의 직관인가?

흔히 경영자를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하곤 한다. 서로 다른 악기의 전문가 집단을 조화롭게 이끌어 ‘음악’이라는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경영자의 역할과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명 지휘자 중에는 리더십 강연자로 활동하는 이들도 많다.

흥미로운 점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직업 만족도가 의외로 낮다는 사실이다.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연주자들은 정작 내 악기를 다룰 줄도 모르는 지휘자의 손끝에 맞춰 연주해야 한다는 점에 큰 불만을 느끼곤 한다. 이처럼 자부심 강하고 개성 뚜렷한 전문가 집단을 이끌고 훌륭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지휘자는 분명 위대한 리더다.

그런데 피터 드러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영자는 단순히 주어진 악보를 해석하는 지휘자를 넘어 그 악보를 직접 써야 하는 ‘작곡가’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영자는 이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경영이란 정말 천재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인 걸까?

드러커는 경영자의 과업이 결코 천재적인 직관이나 영감의 영역이 아니며, 분석 가능하고 학습할 수 있는 전문적인 ‘작업(Work)‘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트레이닝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경영자가 처음부터 갖추고 있어야 할 고유한 요건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의 의미를 면밀히 검토하고 해석해 보았다.

책의 핵심 내용: 경영자의 과업, 업무, 그리고 자질

1. 경영자의 두 가지 과업(Tasks)

진정한 전체(A True Whole)의 창조: 경영자의 첫 번째 고유 과업은 자원의 단순 합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하는 실체를 만드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서로 다른 소리를 결합해 개인이 결코 할 수 없는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직접 곡을 쓰고 지휘를 하는 것과 같다.

현재와 미래의 조화: 현재의 성과를 내면서도 미래의 생존을 준비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 몇 년 뒤 무효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되, 미래를 위해 현재를 무조건 희생해서도 안 된다. 현재의 성과가 미래의 동력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경영자의 실력이다.

2.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경영자의 일

엄청나 보이는 역할이지만, 이는 천재적 직관이 아니라 매우 구조화된 ‘일’을 통해 실현된다. 드러커는 경영자의 업무를 과학적 기법으로 분석 가능한 5가지 기본 활동으로 정의했다.

  • 목표 설정 / 조직화 / 동기부여와 소통 / 측정 / 인력 개발 — 이 활동들은 올바른 방법을 배우고 개선함으로써 누구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영역이다.

3. 경영자의 자질: 학습 불가능한 단 하나의 요건

업무 역량은 개발할 수 있지만, 리더가 처음부터 갖추어야 하는 단 하나의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격(Character)이다. 지식이나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인격적 성실성(Integrity of Character)‘은 가르칠 수 없는 선천적 요건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자질이 개인의 ‘성격(Personality)‘이 아니라 ‘인격(Character)‘이라는 점이다. 친절하거나 카리스마 있는 성격과는 무관하게, 자신과 조직에 엄격한 표준을 적용하며 ‘무엇이 옳은가’만을 따지는 인격적 성실성이 경영자의 필수 요건이다.

토론: ‘Integrity of Character’ – 당신은 어떤 ‘기본값’을 가진 리더인가?

이어진 토론의 핵심 주제는 “도대체 경영자의 인격(Integrity of Character)이란 무엇인가”였다. ‘Character(인격)‘와 ‘Integrity(성실성/진정성)‘라는 단어는 한국어 번역이 까다롭고 의미도 중의적이라 드러커조차 명쾌한 정의 하나를 내놓지 않았다. 토론자들은 각자의 치열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가 갖춰야 할 진짜 모습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갔다.

가르칠 수 없는 리더의 ‘기본값’: 당신은 리더로서 조직에 어떤 인격을 기본값으로 가져왔는가? 한 인간이 가진 인격은 성과를 내는 모든 방식에 고스란히 투영되기 때문에 경영자의 인격은 조직의 중요한 기본값이 된다. 이러한 인격은 (많은 경우 관리의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 리더십 교육을 통해서 트레이닝 되기 어렵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리더를 영입하면, 그가 가진 역량이나 지식, 네트워크 등이 함께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리더가 가진 인격이다. 경영자의 인격은 조직의 ‘기본값’이 된다.

엄격한 표준과 ‘무엇이 옳은가’: 당신은 ‘사람’을 보는가, ‘원칙’을 보는가? 갈등 상황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될 때, 인격적 성실성을 갖춘 리더는 ‘누가 옳은가(정치적 판단)‘가 아닌 ‘무엇이 옳은가(원칙적 판단)‘만을 묻는다. 자신과 구성원 모두에게 타협 없는 엄격한 표준을 적용하고 있는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조직에서 이 원칙을 고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경영자가 ‘진정한 전체(A True Whole)‘를 창조하기 위한 핵심 요건이다.

말과 행동의 일치(Walk the Talk): 당신의 의사결정은 당신의 원칙과 닮아 있는가? 리더가 강조하는 원칙이 실제 행동과 어긋나는 순간, 구성원의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내리는 최종 결정이야말로 리더가 가진 인격의 깊이를 증명하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다. 우리 조직의 리더들은 과연 위기 상황에서 평소의 말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가?

자기통제와 신독(愼獨)*: 감시자가 없어도 당신은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리겠는가? 인격적인 리더에게 성과 측정은 타인을 감시하는 칼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거울이어야 한다. 당장의 실적 압박 속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조차 조직의 10년 후를 위해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힘, 즉 ‘신독’이 당신에게 있는가? 시스템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리더 개인의 인격적 결단이 결국 조직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 유교의 핵심 수양법 중 하나로,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몸가짐을 삼간다’는 뜻

마치며: 결국 경영은 ‘자기 경영’으로 귀결된다

토론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키워드는 ‘신독(愼獨)‘이었다. 훌륭한 경영 시스템과 KPI가 결코 리더의 양심을 대체할 수는 없다. 단기 실적 압박이 거세게 몰아칠 때, 당장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5년 후의 미래를 희생하는 결정을 내려도 시스템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경영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이것이 우리 조직의 미래를 위해 정말 옳은 결정인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조직의 장기적인 생존을 결정짓는 것은 압박의 순간에도 스스로를 다스리며 원칙을 지켜내는 리더 개인의 인격적 성실성, 즉 ‘신독’이 될 것이다.